어떻게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비록 아둔한 통치자라도.
벼슬에서 물러나면 만세에 교육할 가르침을 전하여 학자들이 큰 꿈을 깨치게 하는 사람이다.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참선비들이 많아 바른 세상으로 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혼탁한 세상에서 어진 재상을 대망하듯이.공허한 공유(空儒) 등 못된 선비도 많다고 했다.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
참다운 선비가 보좌해주면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여기면서 당시에도 임금을 도울 참선비가 없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이 시조는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후육곡(後六曲) 중 세 번째 시조다.
옛 성현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 때가 있다.내가 한 말 속에 내가 있다.
죽기 직전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고 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이기론을 형성해 성리학을 완성했다.